예나 지금이나 좋은 집터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어디가 살만한 곳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보니 아무리 봐도 헷갈린다. 이럴 때 참고할 만한 책이 있다. 바로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쓴 ‘택리지(擇里志)’다.
이 책은 단순한 지리서가 아니라, 살기 좋은 터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긴 조선판 부동산 가이드북이다.조선시대의 좋은 집터, A급 택지에 대한 안내서다.
당시에는 도시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용의 대부분이 평야에서부터 산마을, 강마을, 해안마을들의 이야기다. 지금 도시의 집터에 대입하면 맞지 않다. 하지만 요즘의 시골집, 살만한 전원주택 터를 찾을 때는 참고할만 하고 또 적당하다.
집터의 네 가지 조건 – 지리, 생리, 인심, 산수
택리지에서 이중환은 좋은 집터는 반드시 네 가지 요소를 갖추고 하나라도 빠지면 ‘살만한 터’가 아니라 말한다. 자세히 모든 내용을 설명하려면 길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는 지리(地理)다.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땅인가를 살피라는 이야기다.
집은 안전하고 안정적인 곳에 지어야 한다. 해가 잘 들고, 물이 잘 빠지는 곳이 기본이다. 오늘날로 치면 자연재해에 강한 입지라고 볼 수 있다.
둘째는 생리(生利)다. 무슨 일을 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얘기다.
아무리 경치가 좋고 안전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곳에서는 살 수 없다. 일자리, 자원, 경제 활동이 가능한 터전이어야 진짜 ‘좋은 땅’이다. 할 일을 찾아 살 터를 잡아야 한다.
셋째는 인심(人心)이다. 함께 살아갈 이웃이 있어야 한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좋은 이웃, 함께 살아갈 공동체가 있는 그런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넷째는 산수(山水)다. 주변에 즐길만한 경치가 있어야 한다.
집 짓는 곳에 경치가 꼭 좋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즐길만한 경치가 있어야 한다. 조선 선비들은 멀리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지어 다녀오며 자연을 즐겼다. 즉, 생활공간과 감상의 공간을 분리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땅은 없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조차도 조선 팔도에 자신에게 딱 맞는 땅은 없다고 했다.
이 책을 읽고 감상을 남긴 선비 홍중인이란 선비의 말이 인상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어진가 아닌가가 먼저다. 사람이 어질면 어디든 명당이요, 어질지 못하면 아무리 넓은 세상도 발 디딜 곳이 없다.”
그는 황량한 골짜기에서 소박하게 산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작지만 진실한 삶의 기쁨을 이야기한다. 비록 좋은 경치는 없지만, 참되고 정직한 삶이 가져다주는 만족은 끝이 없다고 했다.
좋은 터는 없고 만들어 지는 것
요즘도 전원주택을 짓겠다며 ‘좋은 땅’을 찾아 전국을 떠돌다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완벽한 땅은 없다. 살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터는 지금 이 자리, 바로 내 앞의 있는 것을 가꾸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고, 자산이며, 부가가치다.
명당은 본래 있지 않고 살며 정성껏 가꾸어 가는 곳이다.
'시골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 편한 곳이 진짜 명당! (0) | 2025.04.23 |
---|---|
"집 지을 수 있는 땅은 따로 있다" (0) | 2025.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