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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생활

호미 들고 과로사? 쉬엄쉬엄해도 돼!

by OK시골 2025. 5. 7.

[농민신문에 '김경래의 마을.땅.집'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2025년 5월 7일자 내용입니다.]

 

호미를 들고 마당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봄이 되니 꽃나무에 손이 많이 가고 텃밭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잡초다. 꽃이나 채소보다 잡초가 더 많이 빨리 자란다. 호미 들고 그들과 씨름하는 시간이 번거롭고 귀찮지만, 자연을 선택해 사는 이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일상이다. 돈이 많다면 머슴을 두면 되는데 그런 형편이 못되니 결국 내가 해야 할 몫이다. 그게 시골에서 마당을 가꾸고 텃밭을 일구는 전원생활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도시 아파트의 안락한 소파에 누워 TV 채널을 돌리는 이들에게, 흙투성이 손으로 풀을 뽑는 것은 ‘개고생’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마당일을, 풀뽑기를 하며 마약같이 묘한 희열을 느낀다고 말하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공감하지 못한다.

 

흙냄새·풀냄새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는 순간, 잡념은 사라진다. 작은 씨앗에서 움트는 생명의 경이로움, 꽃 피고 열매 맺는 신비로운 과정을 매일 목격하는 것은 살아 있는 존재들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즐거움을 만끽하려면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체력과 능력에 맞게 해야 한다. 분수를 모르고 과욕을 부리면 오히려 힘든 노동이 돼 스트레스가 쌓이고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삶의 균형을 잃게 된다. 귀촌한 사람처럼 농사가 본업이 아닌 경우에는 ‘노동의 한계’를 스스로 알아야 한다. 의욕이 넘쳐 넓은 밭을 일구지만 힘에 부쳐 수확조차 못하고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미약한 전원생활자들의 자화상이다.

 

그 미약한 거둠에서나마 재미를 느끼면 다행이지만, 텃밭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땀 흘린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지켜보면 아쉽고 씁쓸하다. 좀더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면 풍성한 수확의 기쁨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하며 절망감을 느낀다. 그러지 않으려면 내 노동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둘째는 자연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마당과 텃밭을 마치 아파트 정원처럼 완벽하게 관리하려는 이들이 있다. 마당에 잡초라도 하나 있거나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풀 한포기 없이 깨끗하게 정돈된 마당, 칼날처럼 줄 맞춰 선 작물들은 보는 이에게도 감동을 준다. 그런 마당을 보면서 다들 열심히 잘 가꿨다고 칭찬한다. 이런 남들 칭찬, 외부의 눈을 의식하다보면 지친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정원을 가꾸고 텃밭을 일구는 꼴이 되면 안된다. 그런 강박증이 전원생활의 재미를 앗아간다.

 

굳이 나에게 걸리적거리지 않는다면 방치하는 것이 편하다. 그것이 나의 정원이다. 그렇게 가꾼 정원과 텃밭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는다. 마당 잔디밭의 민들레를 뽑지 않고 그대로 두면 가을에 민들레꽃을 본다. 이른 봄에 보는 것과 다른 느낌이다.

 

마당 구석에 일군 텃밭에 채소를 가꾸면 생각보다 빨리 자란다. 게을러 관리하지 않으면 웃자라 꽃을 피운다. 애써 가꾼 화려한 화초보다 반갑고 아름답다. 게으른 농부가 텃밭에서 쑥갓꽃을 보고 가을 마당에서 민들레꽃을 본다.

 


[김경래의 마을.땅.집]

https://www.nongmin.com/article/20250502500666